스티브 베이커(Steve Baker), 만 20년째 잉글랜드 남쪽 끝 항구도시 플리머스(Plymouth)의 립손 중고등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분이다. 사립학교가 아니다. Lipson Co-operative Academy로 불리는 이 학교는 2009년, 지방 정부로부터 학교의 자산을 인수해 협동조합 재단(trust)을 만들고 협동조합 학교(Co-operative School)가 되었지만 엄연히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공립학교(state-funded school)로 구분된다. 스물 둘에 잉글랜드 북부 랭카셔(Lancashire) 지역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1995년, 이곳 남쪽 끝 플리머스로 옮겨올 때 그의 나이 겨우 서른 여섯 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평양에서 전남 강진으로 거처를 옮기는 그에게도 도전이었겠지만 학교로서도 엄청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험이 20년동안 이어졌다.

 Steve Baker, the Principal,  Photo by K.Ahn

Steve Baker, the Principal, Photo by K.Ahn

스테레오타입은 없었다. 고리타분한 훈시 같은 표현도 없었다. 그는 정열적이었다. 그가 교장으로 보낸 20년동안 영국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벌어졌으며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의해 교육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신랄하게 비판한다.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집단으로 꼽히는 정치인들이 가장 신뢰받는 그룹인 학교 선생님들을 평가하는 것은 아이러니라 일갈한다. 민주주의는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학교 교실에서 그런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그대로 적용되어야 그게 진정한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학습은 교사에서 학생으로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 이것이 그가 평범한 립손 공립학교(Lipson Community College)를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협동조합 학교(Co-operative School)로 전환시킨 이유다. 

7월10일 금요일, 우리가 학교를 방문한 날, 학생들로 조직된 캐터링 협동조합(Catering Young Co-operative)은 다음날 있을 학교 행사에 내놓을 쿠키를 굽고 있었다. 드라마 코업은 그날 저녁 베이커 교장선생님이 직접 연출하는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우리는 친환경 자동차를 만들어 이벤트를 진행하는 협동조합(그린파워, Green Power), 동네 행사에 음악 공연을 해주는 협동조합(빅 밴드, Big Band), 바다 생명체를 연구하는 동아리(생물다양성그룹, Bio Diversity Group)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으로 바쁜 아이들을 만났다. 한국에선 초등학교 6학년 나이에 불과한 7학년의 마이클(Michael Rossington) 은 1년전 이 학교로 진학하기 전부터 협동조합 학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협동조합학교가 품고 있는 핵심 가치는 모두가 차별없이 평등하며 어떠한 독재도 용납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Michael Rossington (12),  Photo by K.Ahn  

Michael Rossington (12), Photo by K.Ahn 

영국 전체로 따지면 7%의 아이들이 연간 최소 17,000파운드(약 3천만원)에 이르는 학비를 내는 사립학교를 다닌다. 그 7%의 특권적 아이들 중 마이클의 용기와 당당함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20년 전 스티브 베이커를 면접했던 학부모 이사, 데비 맥클라우드(Debbie MacLeod)는 젊은 시절 그를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할 지 아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모두 졸업하고 떠난 뒤에도 지역사회 일원으로 학교재단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그녀의 협동조합학교(Co-operative School)는 법과 제도의 형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베이커 교장선생님은 플리머스로 오기 직전, 로치데일(Rochdale)의 한 학교에서 교감으로 일했다. 로치데일, 1844년 세계 최초의 협동조합(Rochdale Society of Equitable Pioneers)이 탄생한 고장이다. 우리는 12살 마이클의 용기만큼이라도 갖기 위해 협동조합학교라는 작은 물길을 따라 영국의 역사를 추적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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