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재미있는 건물을 하나 발견했다. 사실은 몇 차례 그 근처를 지나친 적도 있고 실제 건물 2층에 있었던 모임에도 참여한 적이 있지만 길 건너편에서 보기 전까지 그 건물의 진가를 알아채진 못했었다. 런던 화이트채플(Whitechapel)역과 마일엔드(Mile End)역을 잇는 도로 중간 쯤, 이 기묘한 건물이 거의 90년째 버티고 서 있었다. 가운데가 무너져서 이런 꼴이 된 것이 아니다. 1927년 이 백화점(Wickham) 건물이 만들어 질 때부터 낮고 볼품 없는 집 하나를 사들이지 못한 채, 그렇게 이빨 빠진 모양으로 지어졌다. 스피겔할터(Spiegelhalter)라는 독일 출신의 시계, 금은방 장인(또는 그 가족)이 그 용감한 '알박기'의 주인공이다. 

건물을 지은 포목장사 위캄(Wickham)은 이미 1880년대부터 이 일대의 성공한 상인이었다. 1892년 이미 세 칸을 차지하고 있던 점포를 확장하면서 위캄은 옆 가게인 스피겔할터(Spiegelhalter) 금은방을 3칸이나 더 오른쪽으로 밀어내고 총 여섯칸의 대규모 포목점을 운영했다. 이에 반해 스피겔할터는 1820년대부터 이곳에서 시계, 보석 세공 기술자로 대를 이어가던 장인(匠人) 가족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30여년 뒤, 1920년 즈음 위캄은 마침내 이 일대 상가를 모두 사들여 옥스포드 스트리트의 셀프리지(Selfridge) 백화점에 버금가는 근사한 백화점을 짓기로 마음을 먹는다. 문제는 스피겔할터 금은방이었다. 이미 한차례 점포를 옮기며 돈 많은 이웃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스피겔할터 가족은 이번엔 끝내 집을 팔지 않았다.

그렇게 탄생한 건물이다. 양쪽 모두 포기하지 않았다. 위캄은 버티고 선 스피겔할터가 눈엣 가시였겠지만 그렇다고 공사를 미루지도 않았다. 백화점은 스피겔할터를 가운데 두고 1927년 완공되어 성업하다 1960년대에 문을 닫았고 스피겔할터 금은방 역시 샌드위치 처럼 끼인 모양으로 그 자리에서 가업을 이어가다 1988년, 처분한 것으로 알려진다. 스피겔할터는 그 때까지 무려 100년 가까이 81 Mile End Road 주소지를 지켰다. 스피겔할터의 고집은 물론 인간승리 감이지만 그렇다고 위캄이 실패한 것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런던 이스트엔드(East End)의 동네 백화점이 40년이나 영업을 지속한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특히나 스피겔할터의 점포가 1988년 이후 비어진 채 황폐된 것에 비하면 위캄의 백화점은 여전히 비싼 세입자들이 찾는 상가로 쓰이고 있다. 

  Photo by K.Ahn

Photo by K.Ahn

그렇게 이야기는 주거니 받거니 두 가문의 해피엔딩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BBC에 이 건물의 이야기가 다시 실렸다. 100년 전 '스피겔할터의 고집'이 아직 꺽이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이야기는 현대판으로 이어진다. 

믿기 어렵겠지만, 런던은 서울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의 부자들이 런던의 부동산 투자에 몰리면서 곳곳에 재개발이다. 위캄 백화점 건물도 2009년, 새 주인을 맞아 재건축에 들어갔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의 건축허가를 받기까지 5년이 걸렸고 2014년 마침내 설계도면이 공개(위 그림)되었다. 자리를 비워두기는 했지만 그 스피겔할터의 샌드위치 건물은 모두 없애는 안이 통과됐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2015년 올해 1월부터 스피겔할터 지키기 운동이 시작 된 것이다. 이 지역을 관할 하는 타워햄릿(Tower Hamlet) 구청 인근 주민들이 겨우 뼈대만 남은 스피겔할터 상점 건물이라도 보존 지정해달라는 청원운동에 나섰다. 20세기 건축물 지키기 운동 단체들이 합류하면서 캠페인은 탄력을 받기 시작하더니 2700여 건의 청원서가 접수되었다. 그리고 지난 달, 2015년 5월, 건축주는 새로운 도면으로 한 발 물러선다. 스피겔할터의 전면부(facade)를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아래 그림) 90년 만에 다시 한 번 더 스피겔할터의 고집이 부활한 순간이다.

런던의 유명한 건축비평가 이안 넌(Ian Nairn)은 위캄 백화점 건물을 일컬어 'one of the best visual jokes in London(런던 최고의 익살스런 건축)' 이라 했다 한다. 자칫 런던 변두리의 아류에 불과했을 건축에 스피겔할터는 생명력 있는 스토리를 새겨 주었다. 어떤 이는 '의도하지 않은 천재성'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모순에 가득찬 인간성을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라 칭송한다. 모두 맞는 말이다. 공존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지만 함께 한다는 것은 실제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끝내 확인하는 것은 '함께해서 좋았다'는 점이다.  

과연 인간은 몇 각형일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이 모두 네모거나 모두 세모라면, 비록 모서리는 날이 서있더라도 언제든, 어떻게든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을까? 평화는 시간 문제일 뿐이지 않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네모, 세모가 다르게 생긴 만큼 다른게 인간이라는 점만 분명해 진다. 분명히 우리는 삼라만상을 모두 담은 '오만각형'이라는게 맞을 것이다. 인류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적 상황은 이 서로 다른 모양의 인간들과, 지구를 나누며 함께 살아야하는 ‘숙명’으로부터 발생한다.

스피겔할터와 위캄 백화점 이야기는 개발과 저항, 보상과 철거에 이르는 대한민국에 익숙한 이야기와는 다르다. 통일되고 전일한 것이 주는 간결함도 좋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 상황을 감안하면 '다양성(diversity)'이야말로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포섭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런던의 거리 곳곳에서 확인하는 '스피겔할터의 고집'들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런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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