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국가 

개인도 조직도 사회도,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변화의 속도와 그 이면의 깊이가 비례하지는 않는다. 때론 세상이 다 뒤집어진 듯 호들갑을 떨어도 뒤돌아보면 실질적 변화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변화를 읽어내는 수준이 그러하니 균형잡힌 대응의 속도와 깊이를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어쩌면 그 어떤 변화도 전제하지 않고 늘 그대로의 역할(합의되고 정의된 무엇이 있다면)을 묵묵히 수행하는 쪽이 차라리 나을 수 있다.
얼마전 청와대가 ‘사회혁신’ 수석실을 없애고 참여정부의 ‘시민사회’ 수석실로 되돌아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런 고민과 ‘선택’이 있었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세상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이상, 문제해결의 역량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살고 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몰아치는 변화의 한가운데서 좌표를 찾는 일군의 사회혁신 연구자, 활동가들이 있다. 작년 2017년, 영국에선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번영을 목표로 그 변화된 존재양식을 추적하는 ‘시민사회의 미래(Civil Society Future)’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영국 전역을 돌며 1,500명 이상의 시민을 직접 만나 대화를 이어왔다. 그리고 지난 4월, 중간보고서와 함께 그림 1.의 영국 시민사회 지형도(Civil Society Landscape)를 내놓았다.

 

 그림 1. 시민사회의 지형 (출처:  https://civilsocietyfutures.org/visualising/  )

그림 1. 시민사회의 지형 (출처: https://civilsocietyfutures.org/visualising/ )


 

각 시민사회 주체를 담고 있는 원의 크기는 그 영향력의 크기일 수도 있고, 예산의 규모, 활동의 범위 등이 평가된 결과이다. 과학적, 산술적 측정이라기 보다 현장의 경험이 종합적으로 반영 되었다.
당장 우리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크게 자리한 자선/자원봉사 섹터의 규모와 다양성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비영리 자선/자원봉사 기관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방정부(Public Authorities)에 버금가는 공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에 반해 위 그림에 정당의 역할은 종교기관이나, 심지어 대학에도 미치지 못한다. 기성미디어(Established Media)와 신생미디어(Niche Media)로 나뉘어진 미디어 부문 역시 커뮤니케이션 기술 변화와 영향력 분산이 반영된 결과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지형도가 시사하는 바, 지방정부는 물론이고 중앙정부까지 시민사회의 범위 안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17세기 이후 근대국가가 커먼웰스(Commonwealth)를 내용으로 왕권 보조기구의 성격을 벗을 때, 위 그림의 다양해진 시민사회의 독자적 위상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정부도 한 사람 절대권력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국가기구로서 공인 받았다. 결국 하나의 국가는 그 시민사회의 역사를 포함한 현재(state)를 반영하는 정치 시스템으로 변화,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사실 또는 관점이 중요한 것은 그동안 '시민사회'가 선험적인 ‘국가’와 ‘시장’의 두 권력 사이 어디쯤, 편협한 위상에 스스로를 가두어 왔다는 반성 때문이다. (‘Work in Progress Research Report/April 2018, p.23) 

시민사회를 이렇게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공공영역(Public Sphere)’으로 이해하면 무엇보다 시민사회-국가의 작동성을 높이기 위한 각 부문의 역할을 비교하고 정의하는데 편리하다.
예를 들어 그림 1.에서 유일하게 경계에 걸쳐있는 중앙정부의 역할을 편의상 내부의 ‘경제영역’과 외부의 ‘정치영역’으로 나눈다면, 경계 밖 정치 영역은 시민사회 각 영역의 조화와 협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역할을 맡고 내부 경제 영역은 이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역할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론은 중앙정부와는 달리, 지방정부는 경계 위의 존재로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지방분권이 중앙권력의 일부를 '나누는' 의미라기 보다, 다른 성격의 지방정부 권력을 새롭게 설계하는 '입헌적' 의의를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 2. 중앙정부의 위상 모델

그림 2. 중앙정부의 위상 모델

 

참고로 그림 2.는 시민사회 구성 주체들의 역할을 디자인하고 소통을 이끌어 내는 균형잡힌 '혁신국가' 모델(Model 3)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보여준다. ‘정치과잉’의 Model 1은 시민사회의 경제행위는 시장에 맡기고 공공의 경계 밖에서 권위주의화 하는데,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경제과잉’의 Model 2의 경우보다 어쩌면 더 큰 ‘국가주도형’ 또는 ‘전근대적인’ 정체(政體)가 되기 쉽다.
최근 제기된 ‘국가주의’ 논쟁이 대체로 Model 2를 겨냥한 것이라면 시장의 자율을 보장하는 듯한 Model 1이 오히려 더 심각한 '국가주의 실패'의 모델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주의' 논쟁이 진영간 몰아세우기에 그치지 않고 국가-시민사회의 작동성과 시스템 혁신을 주제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으로, 영국 시민사회 지형도는 시장과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시사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흔히 개인, 시장, 공공의 각 영역에 서로 다른 질서를 부여해 온 것과 달리 이 그림은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모든 부문이 제각각 시민사회의 일 주체로서 마땅한 책임과 역할을 상정하고 있다. 최근 일부 재벌의 일탈행위가 단순히 일시적 공분(公憤)으로 단죄될 것이 아니라 시스템 실패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인 까닭이다.
‘짐이 곧 국가’라 외치던 왕국(Kingdom)이 근대국가로 진화했듯, 재벌 오너의 사유물처럼 여겨진 기업 또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커먼웰스’ 기관으로 ‘근대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가가 시민사회 밖에 있지 않은 것처럼, 시장과 기업도 시민의 사회적 삶 밖에 위치해 있지 않다. 이를 외면 부정해서는 시민사회에서 기업의 생존은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단순히 자선 홍보사업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림 3. 혁신의 영역들 (출처: https://states-of-change.org/resources/landscape-of-innovation-approaches)

그림 3. 혁신의 영역들 (출처: https://states-of-change.org/resources/landscape-of-innovation-approaches)


 

혁신이란 이렇듯 변화의 속도를 읽고, 내재한 시스템의 변화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고난의 과정이다. 하자, 해보자, 구호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슈를 정확히 진단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기까지, 실로 어마어마한 역량이 요구되는 사업이 혁신이다.
세계 최대의 사회혁신기관, 영국의 네스타(Nesta)‘변화하는 국가 States of Change’ 프로그램으로 컨설팅 그룹을 조직해 세계 공공부문 혁신을 지원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민사회 각 부문의 역할을 정의 내리고 그 상호작용의 프로세스를 설계하며, 그 안에서 또는 ‘경계’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지 추적할 때, 또는 실제 그것들을 모델화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길 때, 위 그림 3.의 모든 혁신역량이 총체적으로 가동되어야 한다. 그러한 실체적 노력 없이, '혁신'을 노래 부르는 것은 의미없는 수사에 불과하다.

 

_O8A6864.jpg

이들에 비하면, 
한국의 사회혁신은
너무 쉽다.

공공부문에 국한해 이야기하자면, 정부혁신의 작은 부문 사업의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여기서 ‘사회혁신’은 ‘주민주도의 혁신적인 방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주민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것’('사회혁신 추진계획' 2017년 12월, 행정안전부)으로 정의된다. 주민참여 '프로그램'을 브랜딩하여 ‘사회혁신’으로 통칭한 것이다. 추진단 조직의 목표는 아예 ‘시민주도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정부는 '뒷바침'하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 구현’이다.

문제는 이들 정의와 목표 속에 관(官)과 민(民)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는 여전히 시민의 사회적 삶 속에 존재하는게 아니라 시민사회 위에 '군림'하는 듯 하다. 표현은 ‘시민주도’이고 ‘뒷바침’이지만 내용은 관료들의 ‘책임회피’ 또는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시혜(施惠)’로 읽힐 수 있다. 이런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사회문제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일자리 문제, 경제성장 모두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영국의 ‘시민사회 구성도(Civil Society Landscape)’를 소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이 시민사회 지도를 펼쳐놓고 스스로의 위치부터 파악해 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모니터하며 시민사회-국가의 작동성을 높이는 실질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혁신은 변화하는 시민사회 권력의 현재를 읽고, 때론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 국가 개조, 사회 디자인의 작업이다.

물론 시민사회 지형의 일부에 불과한 정부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함께하는-소셜한 작업이고 그래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이다. 국가를 시민사회 위에 독립된 존재로 상정하는 순간, 사회혁신을 상상할 수도, 수행할 수도 없다. 사회혁신은 정부혁신의 철학이고 방법론이지 그 하위개념, 단위 아이템이 아니다. 구름처럼 태양처럼 하늘 위 존재로 국가를  우러러 보는 한, 정치는 늘 권력 쟁취전이 되고, 모든 문제는 나랏님 탓, 대통령 탓이 된다. 국가는 모든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 된다. 위기는 그렇게 반복된다.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