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부자다. 그 부의 원천이 부동산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부동산을 기반으로 성장한 재벌이다. 그러나 지금 누구나 인정하듯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IT산업이다. 애플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이다. 이들이 트럼프의 무슬림입국금지 조치를 가장 선명하게 반대하고 있다. 산업세력은 봉건적 쇄국(鎖國) 세력을 넘어서야 한다. 중동이 불안할 수록 우수한 두뇌를 수혈받은 IT는 이득이었다. 땅짚고 헤엄쳤던 땅부자는 거기까지 셈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트럼프는, 4차 산업혁명기라 불리는 시대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은 당장의 미국은 반동(反動)에 불과하다.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게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를 돈 수백억을 몰아주었던 것은 상속문제 때문, 그들은 산업세력이 아니라 신분세력이었다. 이래선 삼성이 애플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만든 세계기업이 근본도 없는 가족의 마방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봉건시대를 잘 정리 했어야 했다. 한 번 발을 잘 못 딛으면 역사가 꼬인다. 단박에 어려우면 영국처럼 여건이 허용하는 만큼 조금씩 전진하는 수도 있다. 17세기 내내 권리청원, 청교도 혁명, 공화정, 명예혁명 권리장전으로 이어진 경험과 합의의 결과다. 왕가도 그대로 두고, 중세상인들의 독점, 귀족정치의 요소, 온갖 복잡한 선례들은 관습법이라는 이름으로 안고 간다. 그러다 때가 되면 하나씩 바꿔가는 것이다. 영국에 대법원이 생긴게 겨우 8년 전 2009년이다. 그전엔 상원의 귀족들이 맡았던 역할이다. 의회민주주의를 최초로 시작한 영국이지만 국회의원 임기를 5년으로 못박은 것은 2011년 국회법이 통과되면서다. 그 전에는 세습군주(monarch)인 여왕의 명으로 언제든 해산이 가능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토지개혁이 시작된지 겨우 10여년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은 중세를 정리하지 못했다. 얼기설기 조직적이지 못하더라도 영국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제 힘으로 실행 해야 했는데 남들 손에 넘어갔고, 그것도 한꺼번에 하려 했다. 독립된 나라의 첫 대통령 이승만, 이후 군부 독재도 말로만 대통령이었지 중세기 보다 더한 절대군주였다. 왕이 바뀐다고 절대군주제의 질서와 성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무조건 정권교체의 주장은 반대편 이들에게는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만 들릴 수 있다. 더 강력한 절대군주가 되어 이전 세력을 처단하지 않으면 제가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역성혁명이다.

 
 

다시 트럼프, 땅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 먼저다. 우리는 스코틀랜드 토지개혁부터 공공자산 이전, 공동체 주도 주택개발 사례를 주목했다. 핵심은 ‘어디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토론에 올리는 것이다. 헤어나올 길 없어 보이는 보통 삶의 질곡, 신뢰없는 사회의 고통과 불안을 추적해 보면 결국 토지의 수탈, 사유, 지대(地代, rent)의 독점이라는 케케묵은 문제에 다다른다. 자본주의는 봉건적 사유를 극대화하는 기술, 시대적 변주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시장(market)은 죄가 없다. 다양한 물품과 서비스가 시장을 통해 조달되고 품질을 높인다. 문제는 자본축적을 위해 시장이 왜곡되는 경우다. 수단에 불과했던 돈(money)이 목적이 되는 물신주의, 사적 이윤을 위해 인간을 노예화하고 생명을 도륙하는 공장식 문화, 획일성 같은 것들이다. 그 뿌리에 땅의 소유를 이유로 인간을 지배하는 노예와 중세의 질서가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는 경향이고 문화다. 반면, 봉건은 지배자의 질서이고 억압과 쇄국으로 유지되는 제도다. 이 제도가 민주주의의 결합을 막는다.

제도부터 혁파하는 것이 순서다. 지대 독점을 없애는 것은 땅 뿐아니라 계급화 된 지위의 특권화도 막는 것, 권위주의를 막는 것, 부정부패를 막는 것과 같다. 봉건을 극복하자는 것은 독점으로 향하는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경향성을 제어하는 방법론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땅-자연-인간이 결합한 관계의 문화는 다시 불러와야 한다. 오래된 중세의 문화로 자본주의의 개인 이데올로기와 경쟁해야 한다. 그래서 제도와 문화의 혁신이 맞부딛힐 때, 최후의 승부처는 협동이다. 300년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회에서 협동은 일상적, 자연적이지 않다. 21세기에 소환된 협동조합(co-operative)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협동조합은 시대의 학교가 되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집이 없고, 이웃이 없다. 신뢰가 사라지고 갈등과 투쟁만 남는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세계 대통령이 되듯, 자본 수익성을 간파한 젊은이들이 빌딩 주인을 꿈꾸고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에 뛰어드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공공 일자리를 늘여 실업률을 관리해야하는 나라는 관료주의로 나아갈 뿐이다. 자본주의, 자유민주주의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라도 사회 혁신,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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