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은 일찌기 '소유란 무엇인가?'란 글에서 사유재산(property)은 (그 자체로) 도둑질(robbery)이라 일갈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인간이 창조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소유한다 할 수 있나?' 되묻는다. 사실 공유지를 사유화한 인클로저(Enclosure, 18세기)의 역사 자체가 힘으로 철조망을 치고 법(문서)에 기대어 내 땅이라 '선언'한 것에 불과하니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토지는 소유의 출발이고 소유는 문서로 표현되며 문서로부터 인간의 갈등이 싹튼다고 말했다. 위대한 문학은 위대한 통찰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구로부터, 무엇을 도둑질 했는가? 푸르동에 의하면, 사유(私有)로부터 사회적 정의, 공평, 그리고 자유를 잃었다. 박경리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아마도, 생명과 평화를 잃었다 하지 않으셨을까? 이 주장들이 너무 추상적으로 들린다면 역으로 토지 공유(共有)를 통해 얻어낼 수 있는 무엇을 규명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의 가치 또는 효과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지금까지 토지의 사유화가 앗아간 그 무엇이 된다. 

스티브 와일러에 의하면 지난 10여년, 스코틀랜드의 공유화 된 섬이 가져온 것은 일자리, 청년 그리고 마을의 번영이었다. 그동안 국외거주자를 포함한 몇몇 대지주에 의해 방치된 땅, 소작농들이 겪었던 일상의 가난이 걷혀져 가고 있다. 거기에 이번 장에서 주목해 볼 것은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이하 CLT) 모델이다. 토지의 공동체 소유는 특히 도시의 열악한 주거문제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 먼저 레치워스 가든시티로 가보자

 

Letchworth Garden City, Museum

 

Letchworth Garden City

레치워스 가든시티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인구 3만3천명 규모의 작은 타운이다. 1903년 이곳에 세계 최초의 뉴타운이 건설되었다. 투자수익의 욕망을 부추기는 뉴타운이 아니다. 위 '세 개의 자석' 그림이 보여주듯, 가든시티 뉴타운은, 대도시의 과밀과 농촌의 과소에 따른 장단점을 분석하고 양쪽의 장점을 결합해 ‘행복한 주거’를 실현하는 이상적인 자족도시를 꿈꾸었다. 운동을 이끌었던 토지사상가 에브니저 하워드(E. Howord)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고 투자자를 끌어 모아 토지를 매입, 최고 수준의 건축가에게 도시 설계를 맡겼다. 문제를 발견하고 가치와 명분을 만들고 사업 계획을 짜고 사람들을 규합해 현실화에 성공했다. 전형적인 영국식 혁신이다. 

First Garden City Limited

토지매입의 직접 주체는 퍼스트가든시티주식회사였다. 사람들은 저렴한 토지 임대료를 지불하고 주택을 구매, 거주할 권리를 얻었다. 임대수익은 모두 레치워스의 개발, 관리에 재투자 된다. 지난 110년 동안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레치워스의 소유 구조는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초기엔 주식회사 형태였지만 이것이 바로 공동체토지신탁모델의 원형이다. 땅을 자산화하여 공동체 이익에 재투자하고 거기서 생산되는 가치를 공동체 안에 유지해 시장에 내다 팔지 않는 것이다. 토지분, 개발이익분 만큼 부동산의 시장가격은 낮아지고 자산 수익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역량은 커진다. 부동산의 집합적 소유를 통해 도시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한 것이다. 팻 코너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at Conaty : Letchworth Garden City 레치워스 가든시티?


Community Land Trust, 공동체 토지 신탁

한국과 같은 선분양 제도가 없는 영국에서 경제가 웬만큼 안정적이지 않으면 시장이 막대한 금융리스크를 안고 주택공급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만성적인 경제위기, 긴축재정에 들어간 정부가 이전처럼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에 나서지도 못한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예전 같지 않다. 민간이든 공공이든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데 이민자 유입은 한해 30만명에 이른다. 주택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2016년 6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가 현실화한 배경이기도 하다. 서민들은 살 수가 없다. 주거는 생명의 문제다. 

팻 코너티(Pat Conaty)는 협동조합과 공동체 비지니스 연구자이자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책 '전환의 키워드, 회복력' 의 공동저자다. 그는 오랫동안 공유재(commons)의 창출과 확보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땅, 토지의 공유가 대표적이다. 

팻 코너티(Pat Conaty)는 협동조합과 공동체 비지니스 연구자이자 최근 한국에도 소개된 책 '전환의 키워드, 회복력' 의 공동저자다. 그는 오랫동안 공유재(commons)의 창출과 확보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땅, 토지의 공유가 대표적이다. 

팻 코너티에 의하면 커뮤니티 주도 주택 개발은 이제 단순히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기획을 넘어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상식적 대안이 되고 있다. 여전히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는 레치워스 가든시티의 오래된 경험도 있고, 도심 안 CLT 모델로 저렴한 주택을 구성해 낼 수 있다는 경험도 쌓이고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에는 2016년 현재 약 170여개의 CLT가 활동하고 있다. 영국 CLT 네트워크는 이들로부터 2020년까지 약 3,000개의 새로운 저렴주택(affordable house)이 개발될 것으로 예상한다. 2016년 5월 주택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당선된 사디크 칸(Sadiq Khan) 런던시장은 2025년까지 런던에만 5,000호의 CLT 모델의 주택개발에 나서기로 약속했다. 영국정부도 최근 CLT를 포함한 커뮤니티주도 개발(Community-led Development)에 30억파운드(약 5조1천억)의 주택기금 융자지원 방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CLT가 저렴한 주택공급의 수단에 불과하다면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단계적 수단일 뿐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여러 사회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주거, 주택문제의 실질적 대안으로 거론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카운슬하우스 또는 공공임대주택이 싼 값의 '수용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듯, 문제는 질 높은 주거이고, 그 핵심은 '공동체'다. 주택은 건축에서 시작하지만 적정수준의(decent) 주거를 보장하기 위해선 근사한 건축물 이상의 무엇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바로 공동체, 또는 마을이다. 공동체에 의한 토지 가치의 보유가 전제되고 이를 통한 '관계'의 복원, 지속가능성이 확보될 때 CLT의 진정한 의미가 발한다. 

 

Bristol

 

런던에서 서쪽으로 3시간 거리에 브리스톨이라는 도시가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접경에 위치한 인구 약 50만의 이 도시는 영국인들이 살고 싶어하는 영국 도시 중 하나다. 롤스로이스, 에어버스 등 항공 엔진 산업과 방송, 애니메이션 영화 산업의 좋은 일자리가 있고, 서머셋 지역의 따뜻한 날씨도 그런 인기의 배경이다. 물론 그래서 더욱, 주택문제는 브리스톨에서도 늘 골칫덩이였다. 공동체 자산화를 촉진하는 로컬리즘법(Localism Act)이 제정된 2011년, 브리스톨에도 약 150여명의 회원과 함께 공동체토지신탁(Bristol CLT, 이하 BCLT)이 출범했다. 여느 협동조합과 같이 BCLT의 회원은 1파운드의 회비로 1표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BCLT가 첫 주택개발 프로젝트 대상지로 선택한 곳은 20년동안 쓰지않고 버려진 학교 건물과 그 인근 공공부지였다. 학교 건물은 재건축계획 승인이 떨어진다면 시장가격으로 약 5억원 정도는 되는 건물이었지만 독신 주거용 사회주택 개발을 조건으로 시청으로부터 건물과 토지를 무상(1파운드)으로 제공 받았다. 그 위에 금융 조달로 6채의 가족 주택을 포함, 모두 12채의 집을 지었다. 2012년 개발 계획허가를 신청한 이후 3년이 지난 2015년 여름, 마침내 공사의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올해 2016년 여름, 드디어 입주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들을 찾은 것은 뒤늦은 마감과 입주가 겹쳐져 있던 8월이었다. 

 

FILM : BCLT, Bristol Community Land Trust


 

땅값을 제외하더라도 건축비가 부족했다. 비용을 세분화해 그 부족분을 '함께' 부담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노동지분(Sweat Equity)'의 아이디어다. 집의 마감을 입주민들이 직접,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이때 관련 사회적 기업, 지역 활동가들이 건축 경험 없는 주민들을 돕는다. 잭슨 몰딩(Jackson Moulding) 셀프피니시(자체마감) 매니저도 그런 예다. 셀프피니시 매니저는 그렇게 투입된 작업에 필요한 기술적인 지원과 주민들의 노동시간을 기록해 그만큼 절약한 건축비를 지분으로 나누어 주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지분이나 돈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마을을 만들고 땀흘려 일하는 과정에서 속속들이 이웃과 함께 한 노력과 시간이다. 공개모집과 추첨으로 선정된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마을을 만들어 가며 이웃사촌이 된다. 너른 지붕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소는 마을 공동의 소득원이 되었다. 자원을 나누고, 아이디어와 노동을 나누고, 지역사회 네트워크가 협력해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를 해결해 낸 것이다.

수전은 더 이상 집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은행 대출 없이 집을 얻었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12살 레이첼은 맨발로 온 동네를 내집 드나들 듯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스페인 출신의 제롬과 일본인 시호 가족은 더 이상 월세집에서 쫒겨날 위험 없이 둘째의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평화와 행복이 그동안 투기대상으로 전락한 집으로부터 빼앗긴 것들이 아니었을까?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이웃 공동체와 누리는 인간다운 삶, 행복할 권리를 잃고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