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룸(Frome)

프룸을 처음 찾은 건 2년 전이었다. 총선과 일부 지역의 지방선거까지 치러지던 2015년, 서머셋의 작은 마을 프룸은 또 한 번 영국 정치사에 남을 사건 하나를 기록했다.

프룸을 위한 무소속(ifF, independents for Frome)이 17개 의석 중 10개를 차지했던 2011년의 기록을 넘어 2015년엔 17개 의석 전부를 석권해 버린 것이다. 보수당, 노동당, 자민당 주류 3당이 4년 전 치욕을 만회하고자 전력을 기울였던 선거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정당정치 반대'를 내걸었던 이들 '프룸 독립군'의 압도적 승리였다. 

 
 프룸, 인구 약 26,000명의 작은 타운, 런던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프룸, 인구 약 26,000명의 작은 타운, 런던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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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식 민주주의(Flatpack Democracy)

민주주의가 조립식 가구처럼 납작하게 포장되어 있다면, 매뉴얼만 읽을 줄 안다면 드라이버와 망치 하나만으로 신나게 뚝딱거릴 수 있는, 민주주의가 그렇게 쉽게,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귀에 못이 박힐 대로 들어왔고 평생을 거쳐 때론 수십차례 선거를 치르지만 정작 우리에게 민주주의, 이 묘한 시스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매뉴얼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게 신기할 정도다.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뭔지 알고나 있을까? 소속 정당의 이해를 시민의 절박함 보다 앞세우는 그들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득표의 기술 또는 정치사회의 일원으로 남아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직업적 의무일 뿐, 그들에게서 민주주의의 교양을 기대하는 사람은 더욱 없다.

촛불 하나로 추악한 부패 정권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당장 내년에 예정된 헌법개정과 지방선거로 새로운 정치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한, 촛불로 시작된 민주주의의 진전도 좌초할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피터 맥파디엔(Peter Macfadyen)

그래서 그를 만났다. 프룸의 정치혁신을 이끈 ifF의 파운더 중 한 사람, 프룸 카운슬의 카운슬러(Councillor)이자 전 프룸의 시장, 피터 맥파디엔. 2011년 ifF의 경험을 기초로 'DIY민주주의 매뉴얼'로 내놓은 '조립식 민주주의'의 저자다.

영국의 특수한 정치상황을 기초로 쓴 책 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독일을 비롯한 여러 곳에 번역되고 전파되어 그도 이제 국제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극단주의와 포퓰리즘 사이,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 새로운 물길을 만들고 헌법적 기초를 모색하는 토론 페스티벌이 세계 도처에서 펼쳐진다. 스웨덴에서, 독일과 덴마크에서 모두 그런 기대를 안고 프룸의 스토리를 주목하고 있다.

농부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지역 장의사이기도 한 피터가 편한 셔츠 차림으로 직접 타운홀 문을 열어 주었다. 일요일이었다.

 
 

정치적 삶(Political Life)

정치인이든 정치인이 아니든, 일상의 삶과 정치적 삶은 일치하지 않는다. 권력은 깊고 넓은 간극을 사이에 두고 저기 멀리 있는 무엇일 뿐이다. 피터는 그 이야기부터 꺼냈다. 4년에 한 번, '평범하지 않은' -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 누군가에게 투표하는 것 외에 우리의 정치적 삶은 참으로 빈곤하다. 

배신과 음모가 자연스럽고, 저잣거리에서도 쓰이지 않는 질 낮은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면전에 퍼붓는 사회, 유권자가 쥐어준 권력은 정당의 이익, 정치인 자신의 차기(次期)를 위해서만 쓴다. 정치사회가 계산하는 것은 4년 뒤의 유권자일 뿐, 정치적 일상에서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시민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로지 언론이다. 정보에 목마른 미디어는 정치와 공생의 관계를 맺고 함께 썩어간다. 민주주의를 위한 국민의 세금은 비대해진 선거비용에 담긴 이익집단화 된 정당과 기생 언론을 먹여 살리는 데 쓰일 뿐, 시민들의 토론과 숙의를 촉진하는 데는 배정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나쁜 대통령이 정치를 나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나쁜 사장이 언론을 기레기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소위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적 삶이 그렇게 구조화 되어있다. 

우리는 이런 정치의 이면을 사실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넘쳐나는 말장난과 더러운 스캔들을 소비하고만 있다. 정치를 둘러싼 우리의 삶이 이미 그렇게 고박(固縛)되어 있기 때문이다. 프룸의 독립군들은 이런 도그마가 된 정치관념과 정당 시스템 밖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독립, 인디펜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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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more willing slaves who make tyrants than there are tyrants who make forced slaves”
노예를 부리는 폭군보다 스스로 노예가 되어 폭군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더 많다.
— Publius Cornelius Tacitus [55-117(추정), 제정로마 시대 역사가]

정치적 교양(Political Literacy)

정치를 욕하기는 쉬워도 그 질서의 노예가 된 이상 도그마를 깨기는 쉽지 않다. 피터의 말처럼 정치란, 권력의 자리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정치적 교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 관하여 현대 문명이 구축해 놓은 프로세스가 아직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다수결'로 뽑힌 '그들'이 나 대신 무언가 할 것이라 믿는 것 뿐, 오바마든 문재인이든, 그들을 뽑아 놓은 것 만으로 임무 끝이라 생각해 왔다. 그것은 시민의 교양이 아니라 노예의 종교다. 

시민사회라는 말은 있지만 시민이 사회를 운영, 경영하는 것은 국가 또는 정치사회의 안티테제로서일 뿐이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운동권으로만 충원되어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저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아주 오랫동안 시민이라는 말을 써왔지만 이 정도 스케일의 공동체를 운영해 본 적은 지금 이전에는 없었다. 지금까지 문명의 성장이 이 정도, 또는 겨우 여기까지 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 시대의 숙제를 해야 한다. 

프룸은 도대체 어떤 동네이기에 이런 깊이의 생각에 이를 수 있었을까? 쌀쌀해진 가을비에 아랑곳 없이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시장의 복원(Reclaiming Market)

프룸 독립시장(The Frome Independent)은 한 달에 한 번 서는 시장의 이름이다. 굳이 비가 내리는 9월의 첫 주 일요일을 피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ifF가 중앙정치, 정당정치 또는 정치라는 도그마로부터의 독립을 구한다면 프룸 독립시장은 대기업 유통채널로 부터의 독립, 지역 경제의 독립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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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둘은 모두, 시장의 원래 가치를 복원(Reclaim)하고 정치의 원래 뜻을 복원하고자 한다. 시장이 어떤 곳인가? 시장이란 원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 이윤을 뽑아 내기 위해 거짓과 술수가 판치는 장소가 아니라 모두의 번영이 모색되는 건강한 공간이었다. 

 
 로마시대에 조성된 언덕배기 좁은 골목엔 작은 지역 상인들이 자신만의 물건을 펼쳐놓고 조용히 기다린다. 호객 행위라고는 없다.

로마시대에 조성된 언덕배기 좁은 골목엔 작은 지역 상인들이 자신만의 물건을 펼쳐놓고 조용히 기다린다. 호객 행위라고는 없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청년들이다. '독립'은 젊은이의 브랜드고 특권이다. 이들은 시장의 가치가 살아있는 이 곳에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하는 건강한 삶을 배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청년들이다. '독립'은 젊은이의 브랜드고 특권이다. 이들은 시장의 가치가 살아있는 이 곳에서 지역 공동체와 함께 하는 건강한 삶을 배운다.

 독립, 인디펜던트는 이 시장의 가장 강력한 정신이자 비전, 브랜드이자 문화상품이 되었다.

독립, 인디펜던트는 이 시장의 가장 강력한 정신이자 비전, 브랜드이자 문화상품이 되었다.

 

정치의 복원(Reclaiming Politics)

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원래부터 인간사의 모든 부정적 현상이 모이는 공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건강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대화가 펼쳐지는 곳, 그리고 그 과정이 정치다. 이미 200년 넘은 민주주의 정치가 구중궁궐의 암투가 벌어지던 중세 왕조 시대를 따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치를 오로지 권력을 탐하고 쟁취하기 위한 과정으로 묘사한 교과서들은 모두, 독재자의 이데올로기에 복무하고 있을 뿐이다.

프룸 독립군은 어떻게 맞섰을까? 이들이 정치의 복원을 위해 선택한 전략은 무엇인지 들어보자.

 
 

일하는 방식에 대한 약속(Ways of Working)

현대 정치는 선거라는 이벤트를 통해 제도권에 진입함으로써 시작된다. 대신, 이들의 매니페스토는 달랐다. 소위 무엇을 해주겠다는 ’공약’은 없이 이들은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약속하고 선택을 구했다. 도로를 깔겠다, 공장을 유치하겠다가 아니라 모두의 번영을 위해 당신들의 의견이 있으면 어떻게 듣고, 어떤 식으로 합의하며 어떻게 구현해 나가겠다 그 과정과 방법을 약속하는 것이다.

어쩌면 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피터의 말처럼 이는 결코 단순한 변화가 아니다. 사람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선출하는 데 길들여져 있다. ‘공약’이란 권력자가 시혜적으로 베풀어 주는 무엇이다. 약간의 과장을 섞는다면 지금까지 선거는 주권자가 스스로 노예가 되는 방법에 불과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ifF의 ‘일하는 방식(WoW, Ways of Working)’에 대한 약속은 공약 내용의 변화가 아니라 선거의 성격 자체를 바꾸는 노력의 일환이다. 마침내 선거는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 스스로 권력의 주체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고 촉진할 줄 아는 사람을 뽑는 과정이 된다. 진짜 정치의 복원은 권력의 성격을 그대로 두고서는 불가능하다.

이들의 약속은 그래서, 공직자의 가치관이자 일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가깝다. 

1. Independence. We will each make up our own mind about each decision without reference to a shared dogma or ideology. 이념과 정설에 경도되지 않는 독립성
2. Integrity. Decisions will be made in an open and understandable manner. Information will be made available even when we make mistakes and everyone will have the opportunity to influence decisions. 정보의 투명한 공개, 열린 의사결정 과정
3. Positivity. We will look for solutions, involving others in the discussions, not just describe problems. 문제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대화
4. Creativity. Use new, or borrowed, ideas from within the group and the wider community to refresh what we do and how we do it. 항상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
5. Respect. Understand that everyone has an equal voice and is worth listening to. 모든 사람의 목소리는 평등하고 가치 있음
[Flatpack 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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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과반을 확보한 이후 그들의 약속이 여느 정치인들의 그것처럼 공염불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면 4년 뒤 타운 카운슬 의원 17석 전석을 석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당선과 함께 카운슬 정치 이벤트의 고리타분한 의례부터 고쳤다.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자리에 정장을 입지 않았다. 회의 테이블에 상석(上席)을 없앤 것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일어서서 발표하게 하는 관행도 없앴다. 다른 사람의 과도한 주목이 주는 부담을 고려한 조치였다. 아래 이들이 정한 토론의 방법 10가지도 기록해 둘만 하다.

  1. 자신의 입장을 과도하게 주장하면 건설적인 대화를 방해한다.
  2. 다른 사람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3. 결론을 도출해 내는 이성적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4. 건설적인 토론의 가치를 존중한다.
  5. 토론에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다. 사적인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6. 비밀을 지켜야 할 때도 있음을 알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7. 리더십과 책임을 나누고 무엇을 하려는지 그 의도와 방법을 알리는데 충분한 시간을 쓴다.
  8. 의사결정과정과 방법에 대한 신뢰를 갖고 그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이고 확신을 가진다. 
  9. 고립되어 일하는 것을 피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협력한다. 
  10. 다른 사람들의 역량, 지식, 의도를 받아들이고 신뢰한다.

[Flatpack Democracy]

 
 

피터는 2011년 당선 이후 지금 재선 의원이다. 처음 약속처럼 3선째인 2019년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 한다. 과연 그와 같은 정치인은 계속적으로 충원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누구나 정치할 수 있도록 ‘매뉴얼(Flatpack Democracy)’까지 만든 이들이지만 한편 ifF가 정한 원칙과 가치관은 고스란히 정치인으로서 출마자의 가치관 또는 삶의 목표와 일치되어야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엔 그러한 정치인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주체 역량의 관점에서 보면 왜 지금인가? 라는 물음을 피해 갈 수 없다. 중세에 피터와 그 일당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모두 곧장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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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인가?(Why Now?)

2015년 선거는 프룸에서만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니었다. 2011년의 프룸에서의 경험이 플랏팩 데모크라시 책을 통해 알려진 후 그 매뉴얼로 영국 곳곳에서 들불처럼 지방선거 혁명이 일어났다. Independents for Arlsey (15석 중 14석) Buckfastleigh Independents (12석 중 9석) Alderley Edge First (9석 전체, 현직 재무장관의 지역구) 그리고 Liskeard 와 Newbury 같은 곳에서 과반을 확보했고 2017년 올해 선거가 치러진 Bradford-on-Avon에서 역시 12석 중 10석을 무소속 연대(여기선 Ideal for Bradford라 불린다)가 차지함으로서 평범한 시민들의 독립 정치 그룹이 영국의 지방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고 시민들은 왜 이 움직임에 동조하기 시작했는가? 이들은 스스로 다음의 세가지 원인을 들었다.

첫째, 기술고도화로 인한 일자리의 감소는 물론, 시장에서 모두 소비되지 않는 젊은 층의 역량을 정치에 유입할 여유가 생겼다는 점.
둘째, IT 혁명과 디지털 소통의 시대로, 정치적 의견 수렴과 의사표현, 결정이 쉬워지고 전통적인 정치적 전문성의 비중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 
셋째, 2011년 보수/자민 연립정부의 로컬리즘 법 도입으로 지역 정치의 자율성이 확대, 정치적 공간이 열린 측면.

첫째와 둘째 이유는 정확히 한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한 해 유능한 청년 50만명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 작년 한 해 신생아 수가 40만명이었으니 어마어마한 숫자이고 무언가 사회 구조가 찌그러져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계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ifF가 말한 첫번째 이유에서다. 한 해 50만명이 공공 부문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새롭게 할 가장 강력한 인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둘째, 디지털 소통 인프라는 한국이 뒤지지 않는다. 마지막 셋째 이유는 영국의 특수한 정치적 환경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지난 겨울 촛불항쟁으로 고양된 시민의식, 새정부의 지방분권 약속 등은 한국정치에도 새바람이 휘몰아칠 물적 정치적 환경은 충분히 성숙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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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민(New Citizen)

시민의식이 언제 바뀌겠나 의문은 이제 접어두자. 지금의 시민은 이전의 시민과 다르다. 한 시대를 사는 개인들이 지닌 관념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방식으로 그 시대의 권력과 문화가 결합하여 구성된 것이다. 현재의 시민이 사고할 수 있는 것과 과거의 시민이 사고했던 수준이 같을 수 없다. 지난 몇 년 유럽 곳곳에 새로운 정치운동이 일어나고 한국에 촛불항쟁이 들불처럼 인 것은 그러한 역량의 뒷바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실천으로 말미암아 시민의 역량은 또다른 수준으로 도약하고 있다.

무엇보다, 21세기 기술혁신은 새로운 주체적 개인을 키워냈다. 상품 생산은 주체를 위한 객체의 생산에 그치지 않고 그 상품의 사용, 소비의 과정에서 주체의 성격도 바꾼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통해 사람들은 이미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새로운 성격의 시민 주권자들이다.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 기간 자본주의적 소비와 커뮤니케이션 고도화가 만들어낸 역동적 시민 주체성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정치 격변의 근본 배경이다. 국가가 손을 놓고 있던 사이 자본이 주도한 혁신이 오히려 새로운 시민을 성장시킬 모멘텀을 제공한 셈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시대, 그 공간의 주체들이 선택할 일, 바로 진짜 정치가 작동하고 실천해야할 지점이다. 지금까지 가짜 정치를 그대로 둘 때 이 역동성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의 준동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한민국에도 프룸과 같은 시도를 볼 수 있을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 영국과 한국의 선거 시스템이 다르긴 하지만 '아이디얼 브래드포드'의 경우처럼 최소한 낮은 단위의 지방선거에는 시간이 그리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by Cllr Dom Newton (Bradford-on-Avon)

by Cllr Dom Newton (Bradford-on-Avon)